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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다녀오다 임금님까지 갈아치운 건에 대하여 [조선시대 여성의 장시 여행]

by Wind Travels 2024.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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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양반집 여성들은 시장을 향해 떠나는 장시 여행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식솔들 몇 데리고 그 먼 거리를 떠나 직접 만든 것을 팔기도 하고 생필품을 사기도 했죠.

이러한 그들의 장거리 여행은 여성의 지위, 가문의 경제력과 가문 간의 권력 구도,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권력 구조까지 뒤흔들었습니다. 왕권이 약해지고 중앙집권이 무너지는 데에 큰 역할을 했죠.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까요?



-이건 대체 뭐 하는 문화일까?


일단 장시란 무엇일까요? 정기적으로 열리는 대규모 시장을 의미합니다. 주로 도시나 주요 교통로의 거점에서 열리며, 다양한 상품들이 거래되었습니다. 이는 지역 경제와 물류 유통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여행은 주로 봄과 가을에 이루어졌는데, 이는 농번기가 아닌 시기여서 여성들이 가정을 잠시 비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대개 여종(女從)이나 하인을 동행하여 장시까지 이동했습니다. 주로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이동했는데, 원거리 장시의 경우 하루 이상 걸리기도 했습니다. 장시에 도착하면 여러 날 숙박하며 물품을 구입하고 판매하곤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이 따랐습니다. 도적의 습격이나 강도의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경호원과 함께 다녔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호랑이 출몰이 잦은 산간 지역도 있었으므로 이런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필요에 의해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장시 여행을 감행했습니다. 가정을 위해 물품을 구입하고 가계를 보탬으로써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런 문화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경제적 기능과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행이 가지는 의미


양반 가문, 즉 사회 지도층 급 가문의 여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중요한 장이었기 때문에,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죠. 가문 간의 세력 구도, 알력 다툼, 혼인 관계 등에 여성들의 교류가 기여했습니다. 여성들이 장시 여행을 통해 획득한 정보와 경험은 가문의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의외로 높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헴' 헛기침을 연신 내뿜으며 이런 여자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양반 가주들도 많았습니다. 실리보다 자신의 가치관을 중시한 이 가부장들은 안타깝게도 자기 집 여성들의 장시 여행을 금지하는 헛발짓을 하여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지방이나 중앙 정치의 권력구도에서조차 밀려나게 됩니다.

여자들이 얻어오던 정보를 가문 스스로 차단하는 꼴이 되자 정치적 고립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만들었고, 지역 사회와 단절되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벌어다 주는 돈이 없어지고, 쌀 같은 생필품 구매가 어려워지면서 가문의 경제력과 생활에 점차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시 여행은 가문 간, 친척 간의 교류를 통해 가문 고유의 전통과 예절을 계승하는 장이었는데 소위 선비 정신으로 이를 금지한 가문은 점차 고유의 정체성조차 잃어갔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의 대외활동을 권장한 가문들은 신흥 세력이 되어 국가의 권력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왕조차 권력을 잃어가는 사태가 생겼습니다. 이는 곧 사회 변화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장 보고 왔을 뿐인데 왕조까지 길아치워 버렸네"
그 시대에 우리가 모르던 이런 여행 문화가 있었고, 그게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정말 놀랍고 흥미진진합니다. 역시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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